검색결과
' 전남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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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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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집권 저지 애국도민운동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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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215491
날짜 : 1987.04.14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영구집권음모 노골적으로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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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보 합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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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395053
날짜 : 1977.10.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학민
요약설명 : 분신에 임박하여 - 1977.11.13 전태일 선생 분신 7주기를 맞으며 농촌, 비안개,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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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서[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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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4859
날짜 : 1977.12.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12.6의 동회원들에 대한 불법만행, 구금, 구타사건의 경위를 해명하라 문학인의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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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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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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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자리에는 어김없이 한림이 있었다. 얼마 뒤 민청학련 관계자 가족들이 정식으로 구속자가족협의회를 만들었다. 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인권위원장이던 공덕귀가 초대 회장을, 연세대 구속학생 김학민의 아버지 김윤식이 부회장직을 맡았다. 한림은 총무였다. 민주화될 때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고, 구속자 가족들은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고 그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구속자가족협의회를 새로 만들거나 유지했다. 거기서도 한림은 늘 총무였다. 한림은 평생 총무 이상을 해본 적이 없다. 1963년 한일회담반대투쟁 때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한림은 언제나 뒷줄에 서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제법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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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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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를 통해 알게 된 박석률의 권유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준비위원회’에 가입했다. 유신정권 하에서의 변혁운동은 철저히 비밀 지하조직이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남민전 가입을 할 때 망설이지 않았다. 김남주는 이 조직에서 기관지 《민중의 소리》를 만들고 배포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있던 박광숙도 이 일을 거들고 있었다. 남민전에서는 자금 조달의 일환으로 악덕 재벌의 재산을 탈취하기로 결정하여 전위 조직인 ‘혜성대’를 창설했다. 김남주는 혜성대의 대원으로서 유명 건설회사 회장의 집을 터는 이른바 ‘땅벌1호작전’ 공격조가 되었으나 수위들의 저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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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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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전남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를 결성해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종교계 및 재야인사들과 연대하여 청년운동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1980년 1월, 민주청년협의회 전남 책임자로 활동하던 윤한봉은 5월 15일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대대적으로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무등산 모임에서 후배들과 더불어 도청을 장악하여 투쟁할 것을 역설했다.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짓밟을 때 윤한봉도 시위대에 가담해 싸웠지만 후배들은 “형님! 어서 광주를 빠져 나가세요.”라고 강하게 권고했다. 계엄군에 의해 도청이 장악된 5월 27일, 윤한봉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주동 인물로서 내란음모죄로 전국에 현상 수배되었다. 경찰과 정보 당국은 “윤한봉은 김대중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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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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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건